헌정체제와 법치주의
법치와 정치, 법조인과 정치인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1946∼2009)은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하였다. 전 재판관은 2003년 8월에 재판관에 임명되었으므로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되면 그 임기가 3년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임기 6년의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하기 위하여 재판관 직을 사퇴하게 한 후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문제는, 헌법 제111조 제4항에 의하면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아니면 헌법재판소장이 될 수 없다. 2006년 9월 재판관을 사퇴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요구는 위헌이고 부적법하다. 그런데 이 점을 지적한 것은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아니라, 비법조인 출신인 조순형 국회의원이었다. 그 많은 기라성 같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은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제17대 국회의원 중 변호사 출신은 53명이었다. 나에게는 조순형 의원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하나 남아 있다. 그 분은 지역구 경조사에 돌아다니는 대신 그 시간에 국회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연구하면서 현안에 대해 쓴 소리를 잘 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이다. 1997년 10월의 일이다. 대법원 국정감사가 서초동 대법원청사 4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나는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서 대회의실에는 들어가 배석할 서열이 안 되어 대회의실 옆방에서 스피커로 법사위원의 질의를 들은 후 내가 담당하는 업무에 관한 질의가 나오면 이에 대한 법원행정처장의 답변자료 초안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국감 시작부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로 여야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대개 대법원장은 국감장에서 인사말 정도만 한 다음 퇴장하고, 법원행정처장이 법사위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것으로 진행되어 왔다. 야당 위원들은 대법원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직접 답변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은 난색을 표하면서 실무자가 써준 답변서에 따라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직접 답변한 전례가 없다. 양해해 달라.” 고 답변하였다. 문제는 거기서 터졌다. 조순형 의원이 발언권을 얻어 “대법원이 1995년에 근대사법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법원사>를 보면, 대법원장이 국감장에서 답변한 전례가 있는데, 무슨 말이냐. 1967년 11월 9일 조진만 대법원장이, 1970년 10월 19일 민복기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답변한 예가 있다. 대법원이 발간한 책에 나와 있는데, 전례가 없다니.” 조순형 의원은 법원행정처 실무자들도 잘 읽어보지 않은 <법원사>를 다 읽어 보고 해당 페이지를 들이대면서 법원행정처장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물론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증인으로 답변하는 것 자체는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조순형 의원의 그 날카로운 지적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왕 얘기하는 김에 대법원장이 국감장에서 증인으로 선서하고 답변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 가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장도 그렇고, 헌법기관장인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말했듯이 1997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도 대법원장 증인 채택 문제로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을 때마다 법사위원 중 누군가는 가끔 대법원장의 출석과 답변을 요구한다. 이 해묵은 쟁점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 제121조 제4항에 의하면, 국회의 위원회는 특정사안에 대하여 질문하기 위하여 대법원장 또는 그 대리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대법원장이 자진하여 출석하여 답변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법원장은 대리인을 내보낼 수 있다고 해석되므로 법사위가 대법원장이 불응하는 경우 출석과 답변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법원사>와 국회속기록에 의하면 1967년 11월 9일 조진만 대법원장(1903∼1979)이, 1970년 10월 19일 민복기 대법원장(1913∼2007)이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답변한 예가 있기는 하지만, 국정감사권이 1972년 유신헌법으로 폐지되었다가 부활된 1988년 이후에는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이 국감 증인이 된 적은 없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국정 전반에 걸친 국정감사권을 가진 국회라고는 해도 그 행사에 있어서 입법․사법․행정을 엄격히 분립하고 있는 헌법체계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3부요인’인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은 3부(府)의 수반 또는 수장이기 때문에, 그들이 행한 행정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에서도 피고가 될 수 없도록 예우하고 있다. 이것도 그들이 헌법기관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한 행정처분의 경우 그 불복 행정소송의 피고는 법무무장관이다. 국회의장의 경우는 국회 사무총장이, 대법원장의 경우는 법원행정처장이 피고가 된다. 대법원장의 국감 출석 및 답변 문제를 가지고 아직도 왈가왈부하는 사태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근본적으로 국회의 피감기관 선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부터 시정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법사위가 ‘대법원’을 국정감사대상기관으로 선정하는 것부터가 잘못 된 것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호는 ‘정부조직법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국감대상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 제101조 제2항에 의하면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 헌법기관이고, 단순히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이 아니다.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 즉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원에 설치된 국가기관은 대법원이 아니라 그 산하의 법원행정처, 사법연수원, 법원도서관 및 법원공무원교육원이므로, 피감기관은 이들 4개 기관이 되어야지 대법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대통령의 경우 정부조직법에 의하여 설치된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처가, 국회의 경우 국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회사무처, 국회도서관, 국회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가 국정감사대상기관이 되는 것과도 균형이 맞는다. 국회는 이러한 것부터 헌법정신에 맞게 시정하였으면 한다. 국회의원 총선 때마다 단일 직업으로 보면 주요 정당의 당선인 중에는 변호사가 가장 많다. 법조인 출신의 기존 정치인 외에도 정치신인으로 후보자가 되어 당선되는 법조인도 많다. 변호사 출신은 제17대 국회에서 53명, 제18대 국회에서 58명, 제19대 국회에서 42명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중 41명은 지역구 출신이고 비례대표는 민주통합당 진선미 변호사 1명 뿐이다. 41명 중 초선이 15명이다. 제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법조인은 약 14%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2008년 제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정치신인 중 28%를 법조인으로 충원하였다. 제19대 총선에서는 법조인 출신 신인의 정계 진출이 종전보다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에 대해서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도 논란이 있었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최고위원과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은 새누리당 국회의원 167명 중 법조인 출신이 38명이나 되어 너무 많기 때문에 제19대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는 법조인 출신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법조인들이 서민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고, 현장의 치열함을 모르며, 자신이 잘 난 탓에 국민과 소통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법조인 출신이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그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야 하지만, 심지어 ‘법조당’이니 ‘로펌당’이니 하는 비아냥거림이 정치권에서 난무하면서, 자칫 법조인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상적인 정치는 결국 갈등을 중화하고 정책을 법과 제도로 만들어내는 데 본령이 있는 것이라면, 법학도가 감당하기에 가장 근접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법조인은 원래 복잡한 인간만사와 법률을 다루는 직업이고, 남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데에 익숙하고 그런 것에 숙달된 전문가여서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정을 맡아 처리하는 데에도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법조인이 다수 국회에 진출하여 입법가 및 행정부감시자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준다면 대한민국이 선진법치국가로 발전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앞으로 특히 다양한 전공을 가진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 대거 배출되면, 그 활동 영역을 법조계로 한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법조 인력이 급증하면 ‘정치예비군’의 풀(pool)이 더욱 확대될 것이므로, 법조인의 정치권 진출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법치주의의 내실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의 숫자가 아니다. 그 동안 법조계 내에서나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누가 보더라도 유능하고 정직한 법조인이 과연 정치권에 진입하였는지는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법조인 출신이건 아니건 일신의 영달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도록 하느냐가 본질이지, 법조인 출신 숫자가 많으니 적으니 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법조인의 정계 진출은 세계적인 추세에도 부합한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정치인은 대개 법학도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43명 중 30명이 법학 전공자이다. 미국의 상․하원은 최근 들어와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변호사들이 장악하고 있고, 이것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 법조인의 우수한 능력과 자질에 비추어 보더라도 변호사의 정계진출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법조인은 전통적인 사법의 영역만이 아니라 행정부,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에 진출하여 이미 괄목할 만한 활약을 하고 있다. 당부하고 싶다. 법조인은 국회의원으로서 입법가 내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언제나 법치주의와 정의(正義)를 세운다는 법조인으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법조계로부터 존경 받지 못하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입법부에 진출한 법조인들이 그 동안 과연 법조인·법률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왔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법조인 출신은 체질적으로 체제 순응적이고 과거 회고적이어서 정치적 상상력과 미래 지향적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정치 현장에서 얄팍한 법률지식을 기능적으로 이용하여 정권의 친위대로 활약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제5공화국 때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육법당(陸法黨)’이라고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육사 출신과 법조인 출신으로 이루어진 정당이라는 말이다. 정치권에서 법조인 출신을 세칭 ‘율사(律士)’라고 비하하는 표현이 그러한 정서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세상사를 폭넓게 보지 못하고 법의 잣대로만 만사를 재단하는 데 능한 법조인을 하수로 내려다보는 뉘앙스가 바로 이 ‘율사’라는 표현에 담겨져 있다. 그래서 나는 ‘율사’라는 표현을 아주 싫어한다. 헌법재판소 창설 이래 수백 건의 법률이 위헌 선고를 받았다. 나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헌법이론과 헌법정신을 법률 제·개정 과정에 투영하여야 할 1차적 책무는 법조인 출신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하나하나가 위헌법률이 되지 않도록 법조인·법률가로서 충실히 심의하는 일마저 소홀히 한다면, 그 아무리 거창한 정책을 담은 법률을 만든다 해도, 법조인이 국회에 진출하는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떤가. 나는 정치인스타일이 아니라 전형적인 법조인스타일이다. 나에 대한 고려대 정찬형 교수의 인물평에 따르면 나는 ‘선비스타일’이다. 정치인의 자질도 없고 체질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잘 안다. 나는 늘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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